루즈벨트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과 ‘코트 패킹’ 이야기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재임 1933~1945)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임명한 대통령 중 한 명이며, 그의 임기 중 대법원과의 갈등과 ‘코트 패킹(Court Packing)’ 시도는 미국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과 ‘코트 패킹’
뉴딜 정책과 대법원의 충돌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뉴딜(New Deal)이라는 대규모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여러 뉴딜 법안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루즈벨트의 개혁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당시 대법관들은 대부분 보수적 성향이었고, 고령이었음에도 종신 임기 덕분에 쉽게 교체되지 않았습니다.
‘코트 패킹’(Court Packing) 계획
이런 상황에서 루즈벨트는 1937년, 대법관 정원을 늘리는 ‘법원 조직 개편 법안’을 의회에 제출합니다. 핵심 내용은 70세 6개월이 넘은 대법관이 은퇴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추가로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여 최대 15명까지 늘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고령 판사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었으나, 실제로는 뉴딜 정책에 우호적인 인물을 대법원에 임명해 판결의 방향을 바꾸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 계획은 ‘코트 패킹’이라 불리며, 사법부 독립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가 일어나고, 여론 역시 싸늘했습니다. 결국 법안은 상원에서 부결되어 실패로 끝났고, 루즈벨트는 정치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결국은 대법관 대거 임명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령의 대법관들이 자연스럽게 은퇴하거나 사망했고, 루즈벨트는 임기 중 무려 9명 중 6~9명의 대법관을 새로 임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대법원의 이념적 균형이 루즈벨트와 뉴딜 정책에 우호적으로 바뀌었고,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대법관을 임명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정치적·역사적 의미
루즈벨트의 ‘코트 패킹’ 시도는 대통령이 사법부를 직접적으로 장악하려 한 대표적 사례로, 이후 미국 정치에서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이 미국 정치와 정책 방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간단 요약
- 루즈벨트는 뉴딜 정책 추진 과정에서 보수적 대법원의 반대에 부딪힘.
- 1937년, 대법관 수를 늘려 자신의 정책에 우호적인 인물을 임명하려는 ‘코트 패킹’ 계획을 시도했으나 실패.
- 이후 자연스러운 인사 교체로 임기 중 6~9명의 대법관을 임명, 대법원의 성향을 바꿈.
- 이 사건은 미국 사법부 독립과 대통령의 임명권 논쟁에서 중요한 사례로 남음.